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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

타이완에서 가장 풍부한 장식 예술을 자랑하는 성당
가오슝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
주 소: 가오슝시링야구우푸3로 151호
경 위 도: 120.29175,22.62051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개방
개방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관 기관: 링야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
주관 기관 홈페이지: 링크
E-mail: rosary.kh@msa.hinet.net
문의전화: (07)221-4434

경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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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타이완에서 천주교가 개교한 뒤 건립된 최초의 성당이자 아시아 3대 성당 중 하나이다. 또한 근대 타이완 천주교의 발원지로, 광복 후 연이어 주교좌(카테드랄) 성당과 바실리카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선 고딕, 로마네스크식 첨탑은 아치형 창살과 장미 창문으로 우아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도시화로 인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지닌 주변 건물 사이에서 색다른 느낌을 주며, 타이완에서 가장 장식 예술이 풍부한 천주교 성당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성당은 1백여 년 동안 타이완 남부 천주교 신도들의 신앙 중심지였으며, 종교적 지위나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 측면에서 모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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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간단하게 로사리오 성당 혹은 첸진 천주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나라 시대인 1858년, 청나라 조정이 톈진 조약을 체결한 후 천주교 박해가 중단되자 스페인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페르난도 사인즈(곽덕강, 郭德剛) 신부와 앙헬 보푸룰(홍보록, 洪保祿)신부가 타이완으로 건너 와 포교를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인 전도사 4명과 함께 가오슝 첸진의 해안지역에 있는 현 성당 부지를 구매하여 볏짚으로 간단하게 임시 포교원을 만들었으며, 몇 년 후 다시 흙벽돌과 서양의 붉은 벽돌, 산호석, 콘크리트로 성당을 재건하였다. 성당은 1863년에 재건이 완료된 후 스페인에서 성모상을 모셔오면서 로사리오 성모 성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성당은 일제시대였던 1928년부터 1931년 동안 다시 재건을 거쳤으며 타이완의 중요 천주교 성당이 되었다. 1948년에는 연속으로 주교좌(카테드랄) 성당과 바실리카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이후 크고 작은 몇 번의 수리를 거치다 1995년에 다시 한번 재건을 실시하여 내부의 나무 구조를 철재로 바꾸고, 유럽의 로마네스크식 스타일이 일부 혼합된 고딕식 성당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건축했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위를 향해 수직적으로 확장된 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당은 1998년에 낙성 미사와 바실리카 승격 미사를 거행했다. 2001년에는 가오슝 역사 건축물 10곳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고 타이완 역사 건축물 100곳 중 1위로 선정되었다.

특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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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6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르네상스 건축물 스타일

教堂正面為高聳尖塔天花板上圓拱型裝飾線條層次分明,中央的聖壇則以八角環形處理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1928년 리안쓰(李安斯, 생년 미상~1956년) 신부가 본당 신부로 재직할 당시 재건을 시작하며 건물에 르네상스식 스타일을 적용하고 고딕식과 로마네스크식 스타일을 가진 첨탑을 건축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당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높이 솟은 첨탑 양옆에 작은 위탑이 배치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중후하면서 시각적으로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 있는 건물 선을 보여주고 있다. 성당 내부는 1995년에 재건을 거치면서 목재 구조를 철재로 바꾸고 7쌍의 기둥으로 중앙 신도석과 양측의 통로를 나누었다. 통로 위는 복층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복층 발코니와 천장의 아치형 구조가 교차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천장에는 분명한 선으로 층을 이루는 돔형 장식이 있으며 중앙의 제단은 팔각형의 고리 모양으로 마감되었다.
 

2봉지(奉旨) 석판

奉旨石碑 성당 정면에 아치문 쐐기돌 위에는 ‘봉지(奉旨)’ 석판이 걸려있다. 1874년, 핑둥 완진의 본당 신부는 흠차대신이었던 심보정(沈葆楨, 1820년~1879년)을 통해 동치 황제에게 포교의 자유를 윤허해 줄 것을 주청했다. 심보정은 윤허의 뜻을 받은 후 직접 두 조각의 ‘봉지’ 석판을 새겼으며, 또 다른 석판 하나는 완진의 본당에 놓아 석판이 있는 곳을 지나갈 때는 관료와 군인들이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해야 함을 나타냈다. 석판 좌우 양쪽에는 프란체스코 교황과 추기경의 휘장이 있다. 석판은 1928년 성당 재건 당시 잠시 소재가 묘연했으나 1972년에 신도의 기증으로 성당 밖의 성모정을 건설하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다 땅속 깊이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어 다시 세상에 공개되었다.

3로사리오 성모

玫瑰聖母像 제단 정 중앙에서 모시고 있는 로사리오 성모상은 청나라 시대인 1863년, 성전 재건 시 스페인에서 모셔온 것으로 현재 14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단 위 감실과 제대는 중국식 조각 공예로 꾸며져 있다.

4제대

祭台桌 제대는 하느님에게 예를 표하는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제대에 있는 영문자 JHS는 라틴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를 뜻하는 ‘Jesus Hominum Salvator’를 축약한 것이며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모든 성당이 따라야 하는 교회법 규정에는 제대에 고급 석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곳의 제대는 그리스의 회색 대리석 원석을 통째로 절단하여 만든 것으로 테이블면과 본체, 돌기둥, 받침대의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대 아래에는 1996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품에 올렸으며 중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시성된 프랑스 천주교 애덕 자매회의 선교사 존 가브리엘 퍼보일러(1802년~1840년)의 성유물(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물건이나 유해)이 있다.

5로사리오 성모정

玫瑰聖母亭 로사리오 성모정 1972년에 한 교우가 로사리오 성모에 대한 신도들의 공경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기부하여 만든 성모정으로 내부에 성모상이 설계되어 있는데, 성당 감실에 있는 성모와 같이 작은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매우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6성체를 모신 감실

聖體龕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시 곳으로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아픈 사람에게 성체를 보내기도 한다. 성당 내의 성체 감실은 원래 가오슝 옌차오 성당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1974년에 허전화(何振華)신부가 이곳에 기증하여 보내온 것이다. 무게는 약 100kg이며 휘황찬란한 황금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의 사항

미사는 신도들을 위주로 진행된다. 비 신도들은 미사 전후에 자유롭게 성당을 둘러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방문할 때는 성당 측에 먼저 문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복장과 방문 예절을 주의해야 하며 참관 노선을 잘 따라야 한다. 성당 내에서는 동의 없이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신부 주례의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면 사전에 신청할 수 있다.

주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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