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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 연평군왕사

타이완에서 가장 뛰어난 대표성을 지닌 정성공 사당
타이난 연평군왕사
주 소: 타이난시중시구카이산로 152호
경 위 도: 120.20763,22.98781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
개방시간:
오전 8:30부터 오후 5:30까지
주관 기관: 타이난시 정부 문화국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ckf@mail.tainan.gov.tw
문의전화: (06)213-5518

경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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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군왕사는 타이완에서 정성공을 모시는 100곳 이상의 사당 중 유일하게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지은 정성공 전용 사당이다. 일제시대에는 ‘개산신사’로 개명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타이완에서 가장 먼저 지은 사당으로, 2차 대전 전 일본이 지은 해외 신사 중 유일하게 사당을 신사로 바꾸어 사용한 사례이다. 사당에는 사당의 건축을 청하는 심보정(沈葆禎)의 주청서와 광서 원년(1875년)에 사당을 건설을 윤허하는 교지, ‘충절(忠節)’이라는 시호가 쓰인 현판, 교지를 담았던 상자인 고명상 등을 소장하고 있어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당 내에 있는 정성공 박물관은 정성공 시대의 역사 문화 및 유물을 전시하는 타이완의 주요 전시관이다.

역사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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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군왕사는 1662년에 지어졌으며 ‘개대성왕(開臺聖王)’ 정성공을 모시고 있다. 정씨 왕국이 멸망한 후 백성들은 타이완으로 건너 와 국토를 개척한 정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개산왕묘’를 세우고 섬기기 시작했다. 이 명칭 중 ‘산’은 타이완을 시사하는 것으로 정성공이 개대성왕이라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나라 시대 때인 1874년에 타이완에서 목단사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군은 이를 기회로 삼아 타이완을 공격하였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푸젠의 선정대신(船政大臣)인 심보정(1820년~1879년)을 타이완에 파견하여 이를 대비하게 했다. 타이완에 온 심보정은 정성공을 위한 시호(신하가 죽은 후 황제가 생전의 사적을 평가하여 내리는 칭호)를 내려 개산왕묘를 연평군왕사로 개칭하고 청나라의 춘추 제례에 포함할 것을 주청했다. 이로써 연평군왕사는 일찍이 청나라 시대에 정성공을 모시는 공식 기념 사당이 되었다. 광서제 때인 1895년에 갑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인들이 타이완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연평군왕사는 다시 개산신사로 바뀌었다. 연평군왕사는 광복 후인 1963년에 재건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매년 4월 26일에는 정부를 주축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연평군왕사는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조정이 지은 대형 정성공 기념 사당이다. 현재의 모습은 1963년 재건 당시의 모습이며 2010년에는 타이난시의 아홉 번째 역사 건축물로 등록되었다.

특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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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 연평군왕사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7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삼진양호용(三進雙護龍)식 건축 양식

三進雙護龍建築格局 연평군왕사는 광복 후 철근과 콘크리트로 재건된 화베이식 건물이다. 독립적인 건물로 지어진 대문 위에는 ‘명연평군왕사(明延平郡王祠)’라는 글자가 걸려있다. 그 뒤에는 조벽(대문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만든 벽)과 석조 화로,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개산신사’로 바꾸었을 당시에 남긴 도리이(타이완 광복 후 패루로 개축함)가 있다. 그 뒤에는 삼천문이 있는데 문 위에 걸려 있는 ‘전무고인(前無古人)’ 현판은 정성공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삼천문 옆의 돌계단에는 광서제 때인 1875년에 만들어진 ‘봉지제사(奉旨祭祀)’ 비석이 새겨져 있으며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산문 내에는 과거와 현재의 많은 인사가 남긴 찬송의 글귀를 담은 목조 시사(詩詞) 대련이 있다. 중정과 동무, 서무에는 정성공의 문신들과 무신의 위패, 의장(儀仗) 등을 모시고 있다. 후전에는 제사 공간이 세 곳 있는데, 가운데의 태비사는 정씨의 어머니인 다가와(田川) 씨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좌우는 각각 명말에 순국한 영정군을 모시는 영정군왕사(寧靖郡王祠)와 정성공의 손자인 정극장(鄭克𡒉, 1662년~1681년)을 모시는 감국사이다.

2충간의담(忠肝義膽) 패루

日治時期的石質鳥居忠肝義膽牌坊 연평군왕사 구역 내에서 가장 중화민국적인 요소를 지닌 건축물은 바로 1947년에 국민당 정부가 일제시대의 석조 도리이의 들보를 걷어내고 청천백일 휘장을 설치해 만든 ‘충간의담’ 기념 패루이다. 또한 바이충시(白崇禧, 1893년~1966년) 장군이 쓴 ‘고신병정충오마분강류취한청수우주, 정인부정의칠곤척토막장성패논영웅(孤臣秉精忠五馬奔江留取汗青垂宇宙, 正人扶正義七鯤拓土莫將成敗論英雄)’이라는 대련이 남아있다.

3정전의 정성공 조각상

正殿鄭成功塑像 연평군왕사의 정전 가운데에 있는 정성공 조각상은 높이가 2.1m로 타이완의 유명 현대 조각가 양잉펑(楊英風, 1926년~1997년)이 성립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초상화를 근거로 제작한 것으로, 1961년에 완성되었다. 생동감 있는 조각상은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날카로운 눈빛과 강인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조각상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모습이 아니라 문관의 관복을 입고 가벼운 손 모양을 취하고 있어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슴 앞부분에는 금용이 장식되어 있어 고귀한 제왕의 기세를 드러냈다.

4사당 건립 교지를 담은 고명상

奉旨建祠誥命箱 광서 원년인 1875년, 심보정은 개산왕묘를 ‘연평군왕사’로 재건하고 국가의 춘추 제례에 이름을 올릴 것을 주청했다. 당시 황제는 이를 비준하는 교지를 내렸고, 이를 9마리의 용이 그려진 가로 65, 세로 47, 높이 34cm의 금색 상자인 ‘고명상(誥命箱)’에 담아 전달했다. 현재 고명상과 교지의 복각판은 모두 정전 내에 걸려있으며 교지의 원본은 타이완 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5심보정의 대련

심보정이 개산왕묘의 연평군왕사 개축을 주청 드린 후 처음 재건이 시작되었을 때는 타이완이 허우산 지역 개발 정책을 펴던 당시로 민난과 타이완 관원들이 모두 이곳에 집결하게 되었다. 심보정은 사당 건축 당시,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벽천고득미증유지기, 홍황류차산천, 작유민세계(闢千古得未曾有之奇, 洪荒留此山川, 作遺民世界)’, ‘극일생무가여하지우, 결감환제천지, 시창격완인(極一生無可如何之遇, 缺憾還諸天地, 是創格完人)’이라는 대련을 먼저 만들었다. 이 목각 대련은 정전 양측에 위치해 있다. 1873년에 만들어진 ‘독봉성조삭, 내개반고황(獨奉聖朝朔, 來開盤古荒)’ 대련은 정성공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광서 원년인 1875년에 만들어진 정성공의 어머니를 찬송하는 내용의 ‘치명운궁시고영령불육중토, 벽염황창국유열모내생기아(值明運窮時故英靈不毓中土, 闢炎荒創局惟烈母乃生奇兒)’라는 대련은 후전 태비사의 정모 다가와 씨 위패 양쪽에 놓여 있다.

6정성공 박물관

정성공 박물관의 전신인 타이완 역사관은 일제시대인 1932년에 안핑구보에 지어졌으며 후에 타이난시 역사관으로 개칭되었다. 후에는 츠칸러우로 이전되었으며 1963년 연평군왕사 재건 당시 민족의 영웅인 정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에 새 건물로 건설되었다. 박물관의 소장품도 증가하여 옛날의 대포와 같은 유물도 소장하고 있다. 정성공의 타이완 통치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와 사료 중에는 타이난과 관련된 도자기, 목각, 문서, 화폐, 장부, 무기, 초상화, 탁본, 명청시대 관복 등도 포함되어 있다.

7정성공 석상

연평군왕사 바깥 정원에 있는 정성공의 석상은 무게가 200t에 달한다. ‘취안저우바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중국 취안저우의 화강암을 사용한 것으로 2008년 취안저우시 정성공 학술연구회가 기증한 것이다.

주의 사항

개방 시간: 하절기(4~9월) 오전 8:00부터 오후 6:00까지, 동절기(10~3월) 오전 8:30부터 오후 5:30까지. 관람객들은 정원 내에 있는 진먼 섬 모양을 본뜬 연못을 볼 수 있는데, 이 연못은 정성공이 진먼에서 타이완으로 와 네덜란드 사람을 쫓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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