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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남요궁

타이완에서 가장 전형적인 서양식 사당
장화 남요궁
주 소: 장화현장화시난야오리 난야오로 43호
경 위 도: 120.53854,24.06771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무휴
개방시간: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관 기관: 장화 남요궁(彰化南瑤宮)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tem2599@yahoo.com.tw
문의전화: (04)722-2893

경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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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요궁은 타이중, 장화, 난터우 일대 마조 신앙의 중심지이다. 청나라 시대에 번강의 남요 마조 참배는 타이완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참배 의식이었다. 사당 내부는 민난식, 일본식, 서양 바로크식, 그리스식, 중국 북부식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그중 일제시대의 장파 목공장인 천잉빈이 주관한 관음전(후전)에는 서양식 주랑이 혼합된 일본 건축물에 민난식 겹처마 헐산식 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고금을 막론하고 타이완에서 보기 힘든 사당 건축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사당의 각 건물에는 당대 명장들의 작품들이 모여 있다. 그중 시디파 목공 장인인 왕수파(王樹發)의 대형 목조품 및 조정, 취안저우 조각 명인인 양슈싱(楊秀興)과 톈중의 다른 장인들이 함께 진행한 대장(對場, 장인들이 각각 다른 부분을 맡아 작업하는 것) 작품은 남요궁을 장화시에서 가장 정교하게 장식된 사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역사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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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요궁은 천상성모를 모시는 마조 사당으로 18세기 청나라 건륭제 때 창건되었다. 이 지역은 사당 창건 시에 ‘도시 남문 밖 가마(읍치‘남’문외미‘요’, 邑治南門外尾窯)’이라 불렸기 때문에 남요(南瑤)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요궁에 보존되어 있는 연혁비와 문헌에 따르면 1723년에 장화가 현으로 승격한 후 도공인 양겸(생몰년 미상)이 주뤄현(지금의 자이현) 번강에서 일을 하기 위해 장화로 오면서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번강 천상성모의 향불을 가지고 왔는데, 밤이 되자 이 향불이 오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를 신의 기적이라고 여겼으며 지역 지주들이 자금을 모아 천상성모의 신상을 만들어 모셨다. 1738년에는 신도들이 작은 건물을 지어 ‘마조궁’으로 삼았으며, 이것이 남요궁 사당의 시작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다시 기금을 모아 사당을 짓고 5기의 신상을 만들었으며 정식으로 ‘남요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나라 시대에 여러 번의 재건을 거친 사당은 일제시대인 1916년에 관음전을 지을 때 장파 명장인 천잉빈(陳應彬, 1864년~1944년)을 초청하였으며, 그의 수제자인 랴오스청(廖石成, 1899년~1985년)도 공정에 함께 참여하였다. 1920년에 전전과 정전을 재건할 때에는 취안저우 후이안 시디파 명장인 왕이순(王益順, 1861년~1931년)의 조카 왕수파(王樹發, 생몰년 미상)가 설계를 감독하였다. 사당은 1988년에 장화현 지정 유적으로 등록되었다.

특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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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남요궁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5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관음전의 건축 양식

多重文化風格的建物外觀殿內銅板製的天花十八羅漢洋式框架壁飾 남요궁의 건축물 중 가장 특색을 가지고 있는 관음전은 건축 구도, 세공, 조형 등에서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일본식 및 그리스 바로크 양식이 융합되어 전통 타이완 사당 건축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관음전은 겹처마 겹처마 헐산식(重簷歇山, 네 면으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 지붕 한 층이 더 올려져 있는 형태로 존귀함을 상징함) 지붕을 사용하였으며 정면에는 호랑이 창문 3개가 나 있다. 처마 아래의 난간 입면, 수평으로 만들어진 용마루, 일본식 검은 지붕, ‘국화’ 도안이 새겨진 목조 작품 등은 모두 진한 일본식 색채를 담고 있다. 지붕 처마 아래에 있는 서양 흉벽 양식의 처마벽 난간과 복도의 그리스 도리스식 기둥머리는 깊은 서양 건축 사조의 영향을 보여준다. 건물 내에는 서양식 분위기를 풍기는 동판 천장, 십팔 나한 장식 및 일본식 감실 등 다른 사당에서는 볼 수 없는 장식들이 있다. 이렇게 중국, 서양, 일본 스타일이 혼합된 건축 양식은 1920년대를 전후하여 유행한 것으로 남요궁 건축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일반적인 사당은 모두 중앙에 위치한 정전의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남요궁은 관음전이 정전보다 더 규모가 큰데, 이는 원래 관음전을 정전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렬한 건축 스타일이 보수적인 민중들의 기풍에 맞지 않아 앞쪽에 다시 정전을 지어 대체하도록 한 것이다. 이 건물 또한 천잉빈(빈쓰)의 귀한 작품 중 하나이다.

2흙으로 빚은 거울 테두리

日式風格菊花泥塑鏡框 관음전 내부 양쪽에는 흙으로 빚어진 매우 큰 서양식 거울 테두리가 있다. 이는 매우 특색 있는 타이완 사당의 장식으로 관음전을 건설할 당시 명장들이 이를 장식했다고 하며, 그 목적은 알 수 없다. 테두리 표면에는 일본식 ‘국화’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이러한 거울 테두리는 현재 타이완 전국에서 오직 남요궁 관음전에서만 볼 수 있다.

3평기(平棊)

관음전 윗 부분에는 바둑판의 격자처럼 장식된 천장판이 있다. 이는 송나라 시대의 건축 서적 <영조법식(營造法式)>에서 ‘평기(平棊)’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일제시대의 일본식 건축물에서 유행하였다. 근대에 지어진 용산사, 신주 성황묘, 장화 남요궁(彰化南瑤宮)은 모두 이러한 평기를 가지고 있다.

4삼천전 안의 목조 대장작(對場作)

남요궁 삼천전은 정전이 지어진 후 시디파 목공장인인 왕수파(王樹發)를 초청해 설계한 것이다. 시디파 장인들은 주로 대형 목조 작품과 조정을 시공하였으며 작은 크기의 목조 작품은 취안저우 조각 명인인 양슈싱과 톈중의 장인들이 만든 대장(對場, 장인들이 각각 다른 부분을 맡아 작업하는 것)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민담의 주인공들과 천하장사 등의 인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던 양슈싱은 무늬 조각에 탁월했으며 타이베이 멍자 용산사 등 유명한 사당에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다.

5일제시대 스타일의 용기둥

남요궁 건물 내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용기둥 3쌍이 있다. 3쌍 모두 전형적인 일제시대의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각 삼천전, 정전, 관음전 앞에 서 있다. 그중 삼천전의 용기둥은 1930년 노이마(老二媽) 회원이 기증한 것이다. 재료는 청두석(bluestone)이며 팔각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기둥에는 용 한 마리가 단독으로 조각되어 있고 용의 네 발은 구슬을 쥐고 있으며, 기둥 윗 부분에는 중국의 고전 소설인 봉신연의의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주의 사항

매년 남요궁에서 자이 신강 봉천궁까지 이어지는 참배 의식은 마조회의 각 팀들이 교대로 집행하며, 최근 2년 동안은 옛 참배길을 그대로 재현하여 도보로 행차하였다. 이 참배의식은 타이완 중부 지역의 중요한 종교 축제로 음력 2월과 3월에 진행된다.

주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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